『맥베스』는 맥베스와 만날 것을 약속하는 마녀들의 역설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탁한 대기, 안개 뚫고 날아가자. - 1막 1장 11~12행
이것은 마녀들이 본 '맥베스의 세계'에 대한 현실 인식이다. 맥베스의 세계에는 결정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변화할 뿐이어서 세상은 온통 탁한 대기, 안개로 뒤덮여 있어 모호할 뿐임을 모호하게 말한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긴장한다. 지금의 반란군 맥도날드가 과거에는 덩컨 왕의 신하였듯 오늘 반란군 맥도날드를 쓰러뜨리는 용맹한 충신 맥베스는 안개를 뚫고 내일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안개를 뚫게 하고 그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하고.
눈앞의 공포보다
끔찍한 상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살인은 아직도 환상에 지나지 않건만
그 생각이 내 온몸을 거세게 뒤흔들어
심신의 기능이 억측으로 마비되니
없음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1막 4장 138~143행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의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왕이 되기 위한 반역을 상상한다. 자식이 왕이 될 것라는 예언을 들은 뱅코가 예언의 황홀함 뒤에 숨은 배반의 진리를 깨닫고 경계하는 것과는 달리 맥베스는 욕망의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맥도날드의 반란을 진압한 맥베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에서 덩컨은 아들 맬컴을 후계자로 지정해 맥베스의 조급함에 불을 끼얹고 만다. 결국 그는 마녀들이 말한 세상, 탁한 대기와 안개의 세상을 뚫고 날아가는 동력으로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 욕망'을 선택한다. 그러나 '고운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고운' 세상이기에 그 욕망이 어떤 끝에 도달할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영광을 빚어낼 것인지, 아니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무엇인지. 이렇게 극은 긴장 속으로 돌진한다.
난 젖 빨린 적 있어서
내 젖 먹는 아기 사랑 애틋함을 알아요.
난 고것이 내 얼굴 보면서 웃더라도
이 없는 잇몸에서 젖꼭지를 확 뽑고
골을 깼을 거예요. 내가 만일 당신처럼
이 일 두고 맹세했더라면 - 1막 7장 54~59행
부창부수라 하던가. 결단의 때에 머뭇거리는 맥베스를 최악의 모성으로 다그치기까지 한다.
두 욕망의 결합은 걷잡을 수 없는 행로를 질주한다. 덩컨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한 맥베스는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쟁취한 자가 그러하듯 회한과 두려움의 밤을 지내야 한다.
여전히 못 자리라! 온 집안에 외쳤소
글래미스 영주가 잠을 죽여버렸으니
코도는 더 못 자리, 맥베스는 더 못 자리! - 2막 2장 40~42행
회환과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맥베스는 자신의 마음을 '전갈로 가득 채(3막 3장 36행)'워 아직 실현되지 않은 마녀들의 예언, 즉 뱅코의 후손이 왕이 될 일의 싹을 제거하려고 한다. 뱅코와 맥더프의 가족을 죽인다. 반역으로 왕권을 차지함으로 예언을 실현시킨 맥베스의 입장에서 보면 나머지 예언의 실현 역시 반역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곤 인정받지 못하는 권력자가 필연적으로 걷는 억압과 폭력의 궤도를 어김없이 걷게 된다.
이는 덩컨의 살해는 맥베스를 왕권에 오르는 영광의 계기였지만, 그 순간 맥베스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은 계기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마녀들이 말한 대로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는 것을 그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돌아서지도 못 한다. 그저 파멸을 향해 밀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밀려가지만은 않는다. 레이디 맥베스가 사건 초기의 그 기세등등함에서 전락해 그녀의 두 손에 묻힌 피를 두려워하는 속죄의 모습을 띠게 된다면, 맥베스는 파멸을 향해 오히려 오만하게 달려 나간다.
내일과 또 내일과 그리고 또 내일은
이렇게 옹졸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우리 모든 지난날은 바보들의 죽음 향한
길을 밝혀주었다. 꺼져라, 짦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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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파멸아, 오너라!
과인은 적어도 무장은 갖추고 죽으리라 - 5막 7장 19행~52행

욕망의 실현을 위해 온몸에 피를 묻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그가 종말의 때에 이르러 자신의 욕망이 삶의 열쇠이자 동력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욕망이 있어 탁한 대기와 안개를 뚫고 나갔는데, 그 길이 파멸의 길이었음을 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인생은 욕심이란 촛불이 있어야만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같은 것, 인생은 촛불의 밝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배우와 같은 것 . 그래서 인생이란 파멸인지도 모르고 파멸되고야 마는 바보들의 파멸. 그러나 그는 그 파멸을 피하지 않는다. 왜일까? 비록 그 파멸을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 앞에서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오류로부터 비롯된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맥베스의 이런 태도에서 우리는 인간이 중심이 된 근대적 비극의 장엄함을 느낀다.
이에 비해 맥베스 이상으로 잔인할 정도로 욕망의 불꽃을 뿌렸던 레이디 맥베스는 중세적 인간형에 머물러 있다 할 수 있다. '그녀는 의사보다 신부가 더 필요하다(5막 2장 73행)'는 전의의 말을 인용한다면 그녀의 욕망과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의 기준은 신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맥베스에게 신의 여지가 개입할 틈이 없다. 자신의 몰락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되었고, 그 오류의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패배자다움이 없는 오만한 패배자.
그래서 희랍 비극보다 그 아픔이 인간적 울림을 지닌 채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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