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60년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이 작품의 양념 부분만을 영상화한 느낌이었다. 진 브로디 선생의 교육적 열정, 아이들의 사춘기적 성장 과정 등 소설을 좀 기름지게 해 주는 요소만을 모티프로 해 영화는 상당히 밝은 분위기로 전개된다.
실제 소설 속의 세계는 왁자지껄하다. 브로디의 무리로 불리는 브로디가 총애하는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다른 아이들과는 어울리지를 않는다. 그리곤 브로디가 꺼내 제시한 길만을 걷는다.
그뿐만 아니다. 브로디 선생의 교육자적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시선마저도 아이들이 철저하게 막아준다. 브로디와 아이들은 의식적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브로디는 스스로를 파시스트라고 자부하며 파시즘만이 당시의 영국 사회에 필요한 가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교육관은 전체주의적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에 복무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물 유형은 예외적인 개인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 사회, 좁게는 영국 사회에 유행하는 보편적인 존재였다. 1920~1930년대 유럽 사회의 아이돌은 무솔리니, 나치 등의 파시스트였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소설 속의 세계는 밝고 명랑한 소녀들의 웃음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이면은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로 영국 사회가 그러했다. 나치를 표방하는 파시스트들이 전면에 나서는 등 사회 전체가 파시즘의 촉수에 얽혀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가는 당시의 위기 의식을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브로디에 의해 아이들이 속절없이 브로디적 사고에 물들어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파시즘에 빠른 속도로 침윤되는 영국 사회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한 교실의 아이들이 모두 똑같이 성장하지 않듯, 브로디의 파시즘적 의식화도 브로디 무리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브로디화되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아이도 있었지만,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위험성도 느끼지 않은 채 그 시기를 넘긴 아이도 있었고, 극적인 탈출, 브로디에 의하면 배신을 하여 벗어난 아이도 있었다.
브로디는 아이들에게 파시즘을 교육했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한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브로디 무리 중 누군가가 배신을 했으리라 의심하다 죽는다. 이는 브로디라는 한 개인이 평생 지니고 살았던 오만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파시즘의 사상적 뿌리는 결코 뿌리뽑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염려를 은유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적 개인의 존재는 정체되어 있는 개인 혹은 사회를 뒤흔들어 변혁의 질주를 하게 만들지만, 히틀러처럼 파국의 절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작가 뮤리얼 스파크는 눈 작은 샌디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모니카가 다시 샌디를 찾아왔다. "죽기 전에." 모니카가 말했다. "브로디 선생은 자길 배신한 게 너라고 생각했어."
"배신이란 충성의 의무가 있을 때만 가능한 법이지." 샌디가 말했다.
"음, 브로디 선생에 대해 그런 의무가 없었던가?"
"어떤 선까지만 있었지." 샌디가 대답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심리학에 대한 샌디의 독특한 저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 대해 물으로 그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 책 때문에 너무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샌디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사적으로 면회소 창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헬레나 수녀님, 학창시절 수녀님께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문학작품이었나요, 아님 개인적인 것? 혹시 칼뱅주의였나요?"
샌디가 대답했다. "전성기에 있었던 브로디 선생이었죠."
소설 속의 샌디는 브로디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 작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브로디의 가르침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모습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1930년대를 살던 샌디에게 브로디를 통찰하는 '작은 눈'이 필요했다면, 느닷없이 전체주의의 폭력을 경험하는 오늘날 2023년의 우리는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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